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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村)스러운 디자인이 답이다

이제까지 디자인의 목표는 무엇이었나? 시장에서의 성공과 이익이었다. 이제 우리는 안전, 건강, 행복으로 디자인의 목표를 변경해야 한다. 이제까지 디자인의 대상은 어떤 것이었나? 산업적 방법과 과정에 의해 만들어내는 물건 즉 공산품이었다. 이제 우리는 농촌과 생명과학에서 디자인 대상을 찾아내야 한다. 디자이너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디자인으로 변경되어야 한다.
  • 촌(村)스러운 디자인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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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활 속에서 '촌스럽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어떤 공간이나 사물이 어색하거나 세련되지 못한 것, 그리고 다듬어지지 않고 야생적인 상태로 있는 것을 부정적인 뉘앙스로 표현할 때 촌스럽다고 한다. 촌스럽다의 반대 개념은 도시적인 것, 즉 세련되고 문명적안 것을 이르는 것이다. 촌스럽다는 표현은 대개 문맥 속에서는 나쁜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촌이 진정 나쁜 것인가?

밀레(Jean-François Millet)의 만종(L'Angélus)이나 이삭줍기(Les Glaneuses)를 보면 촌의 농부들의 가난한 삶을 그린 것인데, 이 작품들이 촌스러운가? 아니다. 우리는 이 그림들을 통해 숭고한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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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도시적인 것은 모두 좋은 것인가? 도시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대의 발명품이다. 도시에는 양질의 일자리가 있고, 좋은 의료, 금융, 교육 서비스가 있다. 그리고 폭넓은 문화 향수(享受) 기회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도시로, 도시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도시는 작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사는 곳이다.

밀집해서 살면 더 즐겁고 행복해야 하지 않은가? 그러나 도시인들은 마음을 열지 않고, 생각을 나누지 않으며, 가치를 공유하지도 않는다.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멜랑꼬리하고 고독한 그림이 현대 도시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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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도시를 묘사할 때 고독과 소외라는 단어가 늘 따라붙는다.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살면서 왜 고독한가? 띄엄띄엄 살고 있는 농촌, 산촌, 어촌에서는 고독과 소외를 말하지 않는데, 이렇게 근접한 거리에 모여 살면서 고독과 소외를 말하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컬한 현상이다.

도시인들은 가까이 살기에 전염병이 돌아도 빠르게 확산되고, 사람들이 많으니 감시의 눈이 많아 범죄가 발붙일 길이 없을텐데 강력범죄는 다 이곳에서 일어난다.

이곳에선 사고가 나도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국가온실가스 배출에 관한 통계를 보면, 압도적인 양의 온실가스(GHGs: Greenhouse Gases)가 도시에서 나온다.

여러분도 미세먼지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고 있지 않은가? 이것도 도시화의 댓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이래도 촌은 나쁜 것이고, 도시는 좋은 것인가?

18세기부터 산업화와 도시화는 인류의 꿈이었다. 19세기 영국의 그 저명한 총리 디즈렐리(Benjamin Disraeli)"맨체스터는 아테네만큼이나 인간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이다."라고 찬양했다. 맨체스터는 수많은 중세 도시 중 하나일 뿐인데, 어떻게 영국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뽐내는 도시가 되었을까? 그것은 도시화, 산업화가 그 당시에는 발전과 동의어였기 때문이다.

인류는 농업을 희생시키며 산업을 육성했고, 산업에 기대를 걸었다지난 250년 동안 그 기대는 계속되어져 왔다. 그러나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인류가 알아차렸을 때, 인류는 이미 되돌아 갈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우리는 지금 도시화, 산업화에 대한 혹독한 댓가를 치루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개 도시에서 병()을 얻는다. 그리고 그 병을 치유하겠다고 촌()으로 간다. 농촌, 산촌, 어촌은 치유의 공간이다. 농촌의 농장은 치유와 요양의 장소로 중세기 때부터 널리 사용되어 왔다.

오늘날은 원예치료, 동물매개치료 등, 체험형의 치유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농촌은 치유를 넘어 범죄자 죄수들의 교화 및 교정에도 활용되고 있다.


세계에서 재범율이 가장 낮은 감옥으로 노르웨이의 바스토이(bastoy prison) 교도소를 흔히 이야기한다. 바스토이 교도소는 자연 속에서 수형자, 죄수들이 농사를 짓는다. 바스토이 교도소는 친환경 교도소로도 유명한데, 그곳에는 솔라 패널들이 설치되어 에너지 자급자족을 하고 있다. 그들은 365일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한다. 자연스럽게 동물들과의 접촉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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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활용을 적극적으로 생활화하고, 자신이 기거하는 교도소를 직접 관리하고,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며 살아간다. 이런 삶 자체가 바스토이 교도소가 세계에서 재범율이 제일 낮은 교도소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이다. 유럽에는 출소자들의 재범율이 75%에서 80%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한국은 48%에서 52%에 이른다. 2명이 출소하면, 1명이 다시 죄를 짓고 교도소로 돌아온다. 교도에 실패한 것이다. 

그에 비해 바스토이 출소자의 재범율이 16% 밖에 되지 않는 것은, 춘(村)과 농촌적 삶이 교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20세기 100년동안 인간은 촌에 도시적 삶을 이식시키려 애를 썼다. 가령 자동차를 농촌에 들어가게 노력을 했다. 자동차는 문명의 이기이지만, 그러나 자연의 입장에서 볼 때는 흉기다. 자동차들이 농촌에 들어가고 농촌이 기계화되기 시작했다. 

자연의 속도, 자연의 리듬으로 살아오던 농촌의 삶이, 기계적 삶으로 바뀌고 속도의 삶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러한 속도의 삶이 발전이라 생각했고, 탈(脫)농업화가 근대화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도시가 농촌적 삶으로 바뀌어야 할 차례이다. 수년전 5월 22일에 파리에서 큰 이벤트가 있었다. 

가드 벨이라는 아트 디렉터가 그 넓은 샹젤리제 거리를 준비된 판형의 화분(planter) 8000여개를 깔아서 하룻밤 사이에 농촌 풍경을 연출했다. 농부들이 가축을 끌고 오기도 했다. 시민들은 환호했고, 이틀 동안 시민 2백만명이 참여했고, 농부들과 시민들이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매년 5월 22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다양성의 날이다. 이 행사는 농업의 중요성, 농촌의 고귀함, 노동가치의 신성함, 생물 종(種)다양성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행사였다. 

여러분은 현대인의 식생활 습관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손님을 접대하거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마치 의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많은 접시와 컵이 준비되고, 멋진 모습으로 식사를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유통거리가 매우 멀고 유통기간이 긴, 값비싼 식재료로 만들어진 식사이다. 우리의 공적 생활은 대개 그렇다. 그러나 사적인 삶 즉 개인이나 가족들의 삶으로 돌아오면, 굉장히 값싸고 촌스러운 음식을 추구한다. 로컬푸드를 찾고, 제철식품, 계절음식을 찾아 먹는다. 개인적 삶으로 돌아오면 값싼 식재료로 만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사회적인 회식에서는 값비싸고 건강에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 식생활을 한다. 우리가 공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상품을 대개 백화점에 가서 사고, 사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재래시장에 가서 상품이나 식품을 구입하는 경향이 있다. 현대 도시인들은 이렇게 이중생활을 한다.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는 농업, 원예와 관계가 깊다. 문화의 정의는 호모 사피엔스 즉 지혜를 이용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정신적, 지적 활동의 소산(所産)의 총체이다. 그런데 그 어원이 농업(agriculture), 원예(horticulture)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농업을 도외시하고 어떻게 문화, 예술,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나는 36년 동안 디자인을 가르쳐왔다. 그 긴 교수생활 속에서 내가 주로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은 공학자와 경영학자들이었다. 이제 디자인 교육가와 디자이너들이 빈번히 만나야 할 사람들이 누구일까? 농학자, 의학자, 생명과학자들과 디자이너들이 더 밀접하게 협업을 하고, 통섭해야 한다. 

우리는 농경시대에서 산업시대로, 그리고 지금 지식정보시대로 와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지식정보시대에서 첨단생명공학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그렇다면 산업시대에서 산업디자인(industrial design)을, 정보시대에서는 정보디자인(information design)을 해왔는데, 앞으로 오는 첨단생물공학시대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디자이너들은 내가 평소 주창해온 대로 농업생명중심의 디자인(ABC Design)으로 옮겨가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기계적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디자인의 시대를 거쳐, 경작과 재배를 중심으로 하는 농업생명디자인으로 일대전환을 해야 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자면, 촌(村)다운 디자인, 촌(村)스러운 디자인을 말하는 것이다. 정원이 채원(菜園)으로, 화단이 텃밭으로 바뀌고, 잔디가 작물(作物)재배지로 바뀌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가 빠른 속도로 확산이 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채원 텃밭 작물재배가, 정원 화단 잔디보다 시각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더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디자이너들이 채원, 텃밭, 작물재배지에 관심을 갖고 디자인의 R&D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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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산업디자인 시대의 디자이너들은 산업의 항목들에서 디자인의 대상을 찾았다면, 이제 디자이너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까? 이제는 대상을 농촌, 어촌, 산촌에서 디자인 대상을 찾아내고, 촌(村)스럽고 촌(村)다운 디자인의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농촌을 비롯한 촌(村)은 디자인의 무한한 원천이요 보고(寶庫)이다. 중국의 격언 하나를 소개하겠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을 바꾸지 않으면 그곳에서 막을 내려야 한다. 우리가 지금 변화를 거부하고, 디자인의 목표, 대상, 방법을 전환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이는 우리를 섬뜩하게 하는 경고이다.  

이제까지 디자인의 목표는 무엇이었나? 시장에서의 성공과 이익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안전, 건강, 행복으로 디자인의 목표를 변경해야 한다. 이제까지 디자인의 대상은 어떤 것이었나? 산업적 방법과 과정에 의해 만들어내는 물건 즉 공산품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농촌과 생명과학에서 디자인 대상을 찾아내야 한다. 방법은 어떠했나? 20세기 100년 동안의 디자인 방법은 매우 논리적이고 귀납법적이었다. 그러한 생산 디자인으로부터 스스로 만들어지는 자생(自生) 디자인으로 바뀌어야 한다. 디자이너는 조건만 부여하고 옆으로 비켜서야 한다. 원인이 스스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러한 방법으로 디자인되어야 한다. 

디자이너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디자인으로 변경되어야 한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농촌에서 답을 구하는, 촌(村)스러운 디자인을 말하는 것이다. 


권영걸, (사)문화창조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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